하라다와 아사다 네무이 by Scarlett

솔직히 말하자면, 꽤 최근까지 bl이라는 장르를 다소 경원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호기심 많고 혈기왕성하던 중고딩시절 여느 여자아이들이 그렇듯이(?) 팬픽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bl도 접하게 되었는데, 뭐 재밌게 보긴 했지만 내겐 포르노그라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실제로 이 장르가 어느 정도는 그렇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 듯...)
나이를 먹으면서 작품을 소비하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지면서 아예 이쪽 장르에는 관심이 사라졌고,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그런 편견은 더욱 굳건해졌다.
아, 저런 거 철딱서니 없는 어린 여자애들이나 부녀자들이나 좋아하는 거지. 난 저런거 안 봐.
사실 난 꽤나 취향이 복고적이다 못해 보수적인 사람인데, 그런 면이 저런 편견을 공고히 하는데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몇년 전에 예술관이 확 바뀌게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 이후로 그 전에는 별로 선호하지 않던 19금 컨텐츠들도 적극적으로 찾아 소비하기 시작했다. 남성향 여성향 가리지 않고..ㅎㅎㅎ

그러던 와중에 하라다와 아사다 네무이를 만난 것이다.
(사실 남성향 작가 중에도 상당히 인상적인 작가가 몇 있었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므로 여기선 그냥 넘어가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들은 내가 bl 이란 장르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전에 내가 bl을 소비하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걸 느끼게 해준 작가들이다.
둘 다 가학적인 관계 묘사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상당한 재주가 있는 작가들인데, 차이가 있다면

일단 하라다는 자극적이다 못해 거의 변태 플레이에 가까운...사회적 금기 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는 패기 넘치는 표현방식이 돋보인다.
이 사람 작품은 보다보면 '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해낼 수가 있지....'싶을 때가 많은데 굉장히 아이디어가 넘치고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인 듯.
스스로도 본인을 좀 주체못하는 느낌도 들 때가 있다. 약간 사이코 기질 있는 천재 느낌?
개인적으로는 상업지보다는 동인지 시절 작품들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출판사나 독자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정말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거칠게 쏟아낸 느낌이라 좋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사슬'은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데...
납치&sm플레이는 일본 동인지에서는 흔하디 흔한 소재지만, 보이지 않는 사슬에 담긴 폭력의 형태와 한 인간이 폭력에 길들여지는 심리 묘사는 결코 흔하지 않다.
솔직히 단순히 팬픽 동인지로만 머무르기엔 아까울 정도다.
아무래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bl 작가인만큼 작품을 내는 텀도 굉장히 빠르던데,
흥행이 중요한 출판사 입장에서도 나름 어른의 사정이란게 있겠지만 재능있는 작가를 너무 소진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살짝 든다.
아무튼 그만큼 가장 핫한 작가라는 거겠지.

반면 아사다 네무이는 굉장히 절제된 느낌인데 정서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타입.
하라다의 가학이 보다 육체적이라면, 네무이의 가학은 좀더 정서적인 가학에 가깝달까.
정서적인 가학이라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하냐고 하면 절대로 그건 아니고, 여타 다른 bl에 비하면 성적인 묘사도 거의 없는 편인데도 왠만한 작품보다 효과적으로 야한 상황을 연출한다. '클래스메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는 그 충공깽은 정말...
이 작가는 좀 재미있는게 연출이 bl보다는 사회파 만화에서 잘 쓰이는 기법을 주로 쓴다는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그림체도 좀 건조한 편이고.
앞서 언급한 클래스메이트도 솔직히 마지막 장면만 빼고 보면 학교폭력 고발만화 같기도 하다.-.-;;
솔직히 bl이 아니라 일반 청년지로 데뷔했어도 먹혔을 것 같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my god 같은 작품은 청년지에서 연재했으면 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my god은 네무이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접한 만화인데, 표지에 이끌려서 봤는데(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사진 패러디..;;아니 오마주인가?) 잘만 하면 참 풀어낼게 많은 소재인것 같은데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서 아쉬웠다.
두 주인공의 bl적 관계에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부분이 좀 흐지부지 된 느낌.
하긴 자기도 자기가 그리고 싶은게 있을 텐데 괜히 bl로 데뷔했겠냐만은...나로서는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아무튼 두 작가 다 굉장히 재능있는 작가들이고, 향후를 기대해 봄직하다.
bl이라는 장르도 굉장히 작가 회전율이 빠른 장르인 것 같던데,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작가로 계속 남아 주었으면 한다.

덧글

  • 지나가다 2017/08/01 21:23 # 삭제 답글

    우연히 본 글인데 하라다에 대한 저의 생각과 블로그 주인님의 생각이 상당히 일치하네요 ㅎㅎ 반가워서 댓글을 남기고 갑니다. 확실히 상업지로 넘어가기 전 긴히지 동인지들을 전 정말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특유의 매력적인 그림체와 감정선 묘사가 굉장히 제 취향을 꿰뚤어서 상당한 수준의 변태력 (?)에도 불구하고 보게되는 녀석이죠. (다른 작품들은 제가 읽다가 불편해질때가 종종 있더라구요 그래서 읽다 접음.)
    네무이, 이름이 정말 낯익은걸로 봐서 분명 봤던 작간데 작품이 딱히 떠오르진 않네요. 아쉽네.......
  • Scarlett 2017/08/02 12:12 #

    아무래도 하라다에 대한 감상은 어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워낙 자기 색이 뚜렷한 작가다 보니...ㅎㅎ
    전 지금의 상업지들도 좋아하지만 동인지 시절 눈치 남 의식안하고 하고싶은거 맘껏 분출하는 그때의 그 감성이 좋았긴 하죠. 그림체는 확실히 그때가 더 좋았고. 지금 그림체가 좀더 일반적으로 '예쁜' 범주에 들어사는 그림체이긴 한데 전 어째 예전의 거친 소년만화 느낌이 나는 그 그림체가 좋더라구요.
    아사다 네무이는 'dear my god' 이랑 '형의 충고'로 이름을 알린 작가인데 국내에도 정발 되어있구요. 근데 최근에 잠수를 탄것 같습니다. 2016년 이후로 작품 연재 소식이 없네요ㅜㅜ 저도 지금 검색해보고 안.. 상당히 괜찮은 작가인데 안타까운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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