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전조기 by Scarlett

날 때부터 발에 쇠고랑을 찬 채 평생 다리도 펼 수 없는 작은 감옥 안에 갇혀 살던 사내가 있었습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이곳이 세상의 전부려니 별 불평도 없이 살았는데 말입니다.
딱 하루 창이 열리더니 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내는 그만 달빛을 사모하게 되었지요.
이제 평생 달빛을 볼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달빛을 보게 된 건, 사내에게 잘 된 일입니까? 아니면 잘 안 된 일입니까?
-이육사, 전조기

하라다와 아사다 네무이 by Scarlett

솔직히 말하자면, 꽤 최근까지 bl이라는 장르를 다소 경원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호기심 많고 혈기왕성하던 중고딩시절 여느 여자아이들이 그렇듯이(?) 팬픽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bl도 접하게 되었는데, 뭐 재밌게 보긴 했지만 내겐 포르노그라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실제로 이 장르가 어느 정도는 그렇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 듯...)
나이를 먹으면서 작품을 소비하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지면서 아예 이쪽 장르에는 관심이 사라졌고,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그런 편견은 더욱 굳건해졌다.
아, 저런 거 철딱서니 없는 어린 여자애들이나 부녀자들이나 좋아하는 거지. 난 저런거 안 봐.
사실 난 꽤나 취향이 복고적이다 못해 보수적인 사람인데, 그런 면이 저런 편견을 공고히 하는데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몇년 전에 예술관이 확 바뀌게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 이후로 그 전에는 별로 선호하지 않던 19금 컨텐츠들도 적극적으로 찾아 소비하기 시작했다. 남성향 여성향 가리지 않고..ㅎㅎㅎ

그러던 와중에 하라다와 아사다 네무이를 만난 것이다.
(사실 남성향 작가 중에도 상당히 인상적인 작가가 몇 있었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므로 여기선 그냥 넘어가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들은 내가 bl 이란 장르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전에 내가 bl을 소비하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걸 느끼게 해준 작가들이다.
둘 다 가학적인 관계 묘사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상당한 재주가 있는 작가들인데, 차이가 있다면

일단 하라다는 자극적이다 못해 거의 변태 플레이에 가까운...사회적 금기 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는 패기 넘치는 표현방식이 돋보인다.
이 사람 작품은 보다보면 '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해낼 수가 있지....'싶을 때가 많은데 굉장히 아이디어가 넘치고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인 듯.
스스로도 본인을 좀 주체못하는 느낌도 들 때가 있다. 약간 사이코 기질 있는 천재 느낌?
개인적으로는 상업지보다는 동인지 시절 작품들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출판사나 독자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정말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거칠게 쏟아낸 느낌이라 좋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사슬'은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데...
납치&sm플레이는 일본 동인지에서는 흔하디 흔한 소재지만, 보이지 않는 사슬에 담긴 폭력의 형태와 한 인간이 폭력에 길들여지는 심리 묘사는 결코 흔하지 않다.
솔직히 단순히 팬픽 동인지로만 머무르기엔 아까울 정도다.
아무래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bl 작가인만큼 작품을 내는 텀도 굉장히 빠르던데,
흥행이 중요한 출판사 입장에서도 나름 어른의 사정이란게 있겠지만 재능있는 작가를 너무 소진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살짝 든다.
아무튼 그만큼 가장 핫한 작가라는 거겠지.

반면 아사다 네무이는 굉장히 절제된 느낌인데 정서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타입.
하라다의 가학이 보다 육체적이라면, 네무이의 가학은 좀더 정서적인 가학에 가깝달까.
정서적인 가학이라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하냐고 하면 절대로 그건 아니고, 여타 다른 bl에 비하면 성적인 묘사도 거의 없는 편인데도 왠만한 작품보다 효과적으로 야한 상황을 연출한다. '클래스메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는 그 충공깽은 정말...
이 작가는 좀 재미있는게 연출이 bl보다는 사회파 만화에서 잘 쓰이는 기법을 주로 쓴다는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그림체도 좀 건조한 편이고.
앞서 언급한 클래스메이트도 솔직히 마지막 장면만 빼고 보면 학교폭력 고발만화 같기도 하다.-.-;;
솔직히 bl이 아니라 일반 청년지로 데뷔했어도 먹혔을 것 같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my god 같은 작품은 청년지에서 연재했으면 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my god은 네무이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접한 만화인데, 표지에 이끌려서 봤는데(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사진 패러디..;;아니 오마주인가?) 잘만 하면 참 풀어낼게 많은 소재인것 같은데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서 아쉬웠다.
두 주인공의 bl적 관계에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부분이 좀 흐지부지 된 느낌.
하긴 자기도 자기가 그리고 싶은게 있을 텐데 괜히 bl로 데뷔했겠냐만은...나로서는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아무튼 두 작가 다 굉장히 재능있는 작가들이고, 향후를 기대해 봄직하다.
bl이라는 장르도 굉장히 작가 회전율이 빠른 장르인 것 같던데,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작가로 계속 남아 주었으면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검색유입어 by Scarlett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이제야 봤다 by Scarlett


2000년대 중후반 덕후계를 거의 주름잡다시피 했던 엄청난 흥행작품이지만 여태 보지는 않았었는데, 웹서핑을 하다 이 작품이 이미 고전취급(나온지 이제 십년이 다 되어간단다..) 받는 걸 보고 약간의 쇼크를 받은게 계기가 되어 요 며칠 동안 정주행을 죽 하게 되었다.
그림체도 취향이 아닐 뿐더러 이런 류의 캐릭터 모에 위주의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보지 않았던 건데, 정작 다 보고 나니 왜 그렇게 히트했는지 알겠더라.
개인적으로 쿄애니의 애니메이션 제작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실제로 작품들도 보다가 안맞아서 때려친 게 부지기수인데, 여태까지 본 쿄애니 작품 중 제일 재미있었다.(물론 1기 한정)

다만 6화까지는 이야기의 결이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데, 이후로는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중구난방이라고 느꼈는데 아니나다를까 원작가가 원래 완결지으려고 했던 이야기는 6화까지라고...인기 있으니까 팔려고 늘인 거구나...-.-;;
하긴 캐릭터 운용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끝내기에는 많이 아까운 작품이긴 하다. 이야기의 완결성만 놓고 보자면 6화에서 끝내는게 좋았겠지만....

사실 이런 라노벨 원작의 씹덕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좀 가지고 있었는데, 모에 애니메이션이라고 다 같은 수준은 아니라는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캐릭터로 어필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님. 특히 요즘같은 시기에는.
아마 이 애니메이션을 기점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좀더 노골적으로 모에를 팔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이전에도 그런 애니들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류의 작품들을 다소 멸시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고 실재로 작품 퀄리티도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 작품이 그런 모에 애니메이션들의 양지화+고퀄리티화 하는데 기폭제가 된 셈이랄까. 이제는 뭐 모에를 안 내세운 애니를 찾기 힘들 정도로 대세가 됐으니.

사실 이런 류의 흐름을 탐탁치 않아 하는 나로서는 이 애니메이션에 애증의 감정이라도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싶지만, 이 작품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애니라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물론 1기한정)
나온지 거진 십년 다된 애니가 아직까지 우려먹고 있으면 말 다했지. 원작가가 부러울 따름이다.

영국소설을 통해 본 영국신사들의 명암 by Scarlett


영국은 가본적도 없고 영국사람은 만난 적도 없지만 소설이나 영화 같은 매체에서 영국이란 나라는 제법 매혹적인 나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셜록홈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인 오스틴의 달콤한 로맨스가 있는 나라 아닌가.

영국의 근대 시절에 나온 소설들은 끊임없이 지금도 재생산하고 있으며 아마 자기네 나라 고전이 범세계적으로 소비자들한테 꾸준히 어필하는 나라도 영국이 제일일 것이다.


저자는 레벨 만렙의 영국소설 덕후로서 제목 그대로 영국소설을 통해 본 영국신사와 - 그들의 배경인 당시 영국사회의 실상- 들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영국의 신사도는 중세 기사도에서 유래했는데, 사실 기사도는 중세 유럽에서 전반적으로 유행한 사회적 필요해 의해 만들어진 정신으로 '영주에게 충성하고 숙녀(영주의 아내)를 보호한다.'를 기본 모토로 삼고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시대 신화의 영웅을 원류로 보긴 하지만, 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은 기사도라 하는게 옳은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도가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서 신사도로 바뀐 것인데, 그 모토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영주가 대영제국(혹은 여왕)으로 바뀌고 숙녀는 여전히 영국 신사들이 보호할 대상이었을 뿐.


책의 상당 부분은 근대시절 나온 영국소설과 그 사회에 대해 주력해 서술하고 있는 편이다.

이에 대해 불만(?)을 품는 독자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인지도 있는 영국소설들은 다 그 시대가 배경이니 그다지 납득 못할 부분은 아니다.(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그 시절 소설을 좋아하는것 같다.)

단순히 영국신사에 대한 담론만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당시 중상류층 영국인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떻게 처신했으며 남녀 관계의 구애 이야기 등등 전반적인 생활양식과 시대 묘사가 충실한 편으로, 근대시절 영국의 생활상이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무척 만족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저자의 다소 편향된 관점이 보일 때가 있었는데, '당시 영국 신사들이 소설에 나오는 신사들처럼 모두가 이상적인 신사는 아니었다.' 라고 서술하면서도 '한국의 양반이나 일본의 사무라이에 비해서는 그들은 좀 더 관대했다.'라고 뒤에 덧붙이는 걸 봐서는 상당한 영국 빠순이인듯 했다.(그래도 나이가 있는 학자이다보니 온라인에 널린 영국병 걸린 처자들처럼 대놓고 티내지는 않는다. 은연중에 느껴질 뿐ㅎㅎ)

적어도 저런 결론을 내려면 역사적 사료에 입각해서 좀 더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해 적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이니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꽤 괘찮은 책이다. 익숙한 소설들(물론 여기에 언급된 소설들을 전부 다 읽어본 것은 아니다. 저자의 영국소설 덕력은 어마어마하다.)을 가지고 설명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섬세한 느낌의 학술서적이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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